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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의 가치와 의미, 주민자치 통해 드러난다.[이호 더 이음 공동대표 특별기고]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연방제에 버금가는 분권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다. 사실, 지방자치제가 다시 시작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우리의 분권 정도는 매우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자치 입법권도 ‘법령의 범위 내에서’(헌법 제117조제1항, 지방자치법 22조)로 규정되어 있다. 실상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로 수정되지 않는다면, 중앙정부의 판단 여하에 따라 자치입법권 자체가 심히 무력화될 소지가 많다.

자치입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사무 중 중앙정부의 사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나머지 20%만이 지역정부의 사무로 분류된다. 그만큼 지역정부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사무의 범위가 좁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역사무의 60%가 실제로는 중앙정부로부터 위임된 사무다. 따라서 전체 사무의 8%만이 실질적인 지역의 고유사무다.

이러한 미약한 분권 현황은 세입 배분에서 더 잘 드러난다. 아무리 지역 사무 비중을 늘려도 그에 따른 재정 조달이 되지 않으면, 중앙정부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현행 지방세와 중앙세의 비중은 심각하다 못해 비참할 정도다.

현재 세입은 중앙 77.5% : 지역 22.5%. 지출액은 중앙 62.1% : 지역 28.9% : 지역교육 9.2%의 비중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중앙과 지역의 재정사용액은 41.9% : 58.1%다. 이는 그만큼 지역정부가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외국의 상황을 보면 우리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일본과 미국, 프랑스의 자치사무 비중은 각각 60%, 50%, 40%에 달한다. 특히, 프랑스는 세계적으로 분권이 미흡한 나라로 분류됨에도,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치사무 비중이 높다. 세제에 있어서도 스페인과 일본의 지방세 비중은 각각 45%와 40%에 달한다. 세계적으로 분권이 중요하다고 강조되는 이유는 분권의 핵심 가치가 ‘자치’를 강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치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로 구분된다.

그런데, 우리의 분권 논의는 뭔가 아쉽게 흘러간다. 지방자치제가 민주주의 학교라는 평가를 한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이 주목한 미국의 지역정치 관련한 핵심은 주민자치에 있었다. 시민들이 직접 결정권한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과정을 통해 민주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한 분권이 풀뿌리민주주의를 강화한다는 것은 풀뿌리 즉 민초들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이는 모두 시민 또는 주민들의 자치를 강조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분권의 핵심은 자치에 있고, 그 중에서도 참여하는 주민 즉 시민들에게 직접 결정권한을 부여하는 주민자치야 말로 분권 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는 기존 중앙정부에서 가지고 행사하던 권한을 지역으로 분배하는 과정에는, 분배할 그 권한을 누가 사용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거버넌스에 대한 공감대 확산은 각종 주민참여제도의 확산과 활용 빈도 증가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발전이야 말로 질적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것이라는 그 간의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일부 정치 엘리트들에게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권에 대한 논의와 강조는 당연히 지역으로 배분된 권한에 대한 사용권을 어느 주체에게 부여할 것인가 하는 논의와 고려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권이 기존에 ‘제왕적 단체장’이라 칭해지는 자치단체장의 권한만을 강화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는 분권에 있어 주민들에게도 적절한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분권과 자치의 흐름에 있어 새 정부 들어 발표된 혁신읍면동 계획은 주민들에게 일정한 권한을 부여하려는 새 정부의 의지가 담긴 정책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그와 관련된 예산이 이번 국회 예산심의에서 전액 삭감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더구나 이 예산을 반대한 정당에서는 우리의 주민자치가 이미 잘 이뤄지고 있다는 논리도 등장했다.

하지만, 기존 주민자치위원회는 그 구성 과정의 폐쇄성만이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으로는 아무런 권한도 지니지 못한 채 읍면동장의 심의·자문기구로 규정되어 있다. 이 정도로는 주민자치가 이뤄진다고 평가할 수 없다.

비록 국회에서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됐지만, 그래도 이 계획 자체를 무산시켜서는 안 된다. 어쩌면 너무 의욕적으로 급하게 추진되는 듯해 일부 우려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예산 전액 삭감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것을 긍정적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즉, 기존의 계획을 보다 차분하게 재검토하고 보다 넓은 공론을 거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재검토의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고려했으면 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배분할 권한을 구체적으로 누가 사용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보다 많은 권한이 부여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주민 대표성이 보장·강화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성을 부여하는 방법에는 선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계획대로 공개모집과 공개추첨도 대표성을 부여하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다. 이 방법이 현장에서 적용될 때는 여러 가지 우려가 따른다. 이에 대해서도 좀 더 많은 고려가 뒤따랐으면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다양한 주민들이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이들이 네트워크로 참여하는 형태 중심으로 주민자치회를 구성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지역사회를 주민자치 중심으로 전면 재편하는 방안이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되고 논의되었으면 한다.

▲ 이호 더이음 공동대표

이호  gre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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